분할의 경계 아닌, 잇댐의 경계를 말하다

작품은 숙성될 때 제 맛을 낸다. 청주시립무용단의 ‘붉은경계-in&out’이 그러하다. 2024년 10월 10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는 무용단 정기공연이자 홍은주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의 취임공연이 진행됐다. 이 작품은 2023년 ‘사이의 온도’ 듀엣 무대를 시작으로 2024년 3월, ‘내일을 여는 춤’ 개인전에서 공연한 바 있다. 작품 규모와 내용은 점층성을 보인다. 올 3월 공연에 대해 평자는 ‘철학적 탐미 가득한 넥타이 살풀이춤’이라고 평했다. 특히 안과 밖, 비움과 채움의 현대적 조형성이 돋보였음을 강조했다. 직업무용단과 함께한 이번 ‘붉은경계-in&out’은 삶의 경계를 안무자만의 고요하되 묵직한 성찰적 시각으로 형상화 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남자무용수가 후방에서 서서히 걸어나온다. 붉은빛 퍼진다. 구음이 감싸는 가운데 살풀이성이 눈 뜨기 시작한다. 넥타이를 맨 여자무용수들의 무브먼트 후, 군무가 성스럽다. 타악성 짙은 음악 속에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무용수와 하얀 넥타이를 맨 여자무용수의 대조미가 색깔만큼 강렬하다. 공존과 충돌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경계가 지닌 중의성은 공간 속 움직임과 안무 변화를 통해 너끈히 객석으로 전달된다.

여자 군무의 비상은 영혼의 고양과 결을 같이한다. 특히 노스텔지어(nostalgia)풍의 서정성, 유혹과 욕망의 양가성은 파도소리에 밀려 오간다. 말그대로 in&out이다. ‘in&out’은 나를 통해 너를 바라보고, 너를 통해 나를 성찰하는 철학성이 담지됐다. 아(我)와 비아(非我)로 점철된 우리네 삶의 무용적 초상이라 볼 수 있다.

작품에서 무대 4면의 테두리에 있는 붉은천을 힘겹게 걷어내는 장면은 안과 밖의 물리적 공간 너머의 공간을 헤쳐나가는 처절한 투쟁이다. 분할의 경계가 아니라 잇댐의 경계라 볼 수 있다. 넥타이의 물성이 몸성으로 이어지고, 그 몸성은 영성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삶의 관통이다.

전통 살풀이를 모티브로 해 현대성, 창작성을 부여한 이 작품은 욕망으로 인한 불확실성, 내면의 갈등, 경계속에서 마주하는 다층적 심경이 비움을 호명한다. 전통-현대-전통의 예술적 구조다.

이번 공연은 시간의 문을 여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행도’, ‘금도’, ‘심도’로 전개된다. 에필로그 ‘텅빈 파동’은 앞의 감정을 편안히 안아주되, 약동하는 파동으로 오늘은 어제와 같음을 힘있게 말해준다. 김연정(꿈꾸는 여인), 박정한(자유로운 영혼), 성용진(내안의 욕망)은 각 배역의 성정을 잘 담아냈다. 김지성 지도위원의 지도, 이세이(수석단원), 임진희, 김혜경 단원 등 청주시립무용단원의 역량은 춤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했다. 연출(박종원), 분장(최유진), 영상(황정남) 등 각 파트 스태프의 역할도 일조했다.

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홍은주 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예술적 날갯짓은 이번 작품 속 나비와 닮았다. 침묵하되 자유롭다.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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