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전후하여 문화예술계도 다양한 방식으로 현 시국 상황에 연루되어 왔다. 계엄령 포고령에 특별히 언급된 의료인들만큼 특정화 되지는 않았으나 본의 아니게 문화예술계에도 여기저기서 불똥이 튀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접한 ‘윤비어천가' 사건은 대통령 경호처의 과도한 충성 행위와 문화예술의 정치적 도구화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회자되는 ‘윤비어천가'는 조선 시대의 ‘용비어천가’에 빗댄 말로, 대통령 경호처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지칭한다. 이 행사에는 윤대통령의 생일이 다음날이어서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몇가지 이벤트가 곁들여졌다고 한다. 유명 뮤지컬 노래, ‘렌트’의 ‘시즌스 오브 러브’의 가사를 개사하였다고 하는데 반복적으로 가사에 나오는 "84만5280분"은 대통령 취임일부터 행사 당일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또한 생일 축하곡도 이어졌는데 가수 권진원의 ‘해피 버스데이 투 유’의 가사를 바꿔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라고 개사했다. 특히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이란 부분은 중세시대의 왕이나 전체주의 시대의 1인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적지 않다.

이 사건은 “경호처를 아부꾼으로 전락시킨 ‘윤비어천가’”라는 동아일보 사설 제목에도 있듯이 경호처가 집중적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있다. 그런데 나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이벤트를 경호처 차장이 주도했다고 해서 경호처 직원들끼리 노래를 부른 정도로 생각하고 스쳐 지나갈 뻔 했는데 알고 보니 음악 전문가들에게 외주를 맡겼다는 것이다.

음원을 들어보니 편곡자가 개입되어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에 의해 스튜디오에서 잘 녹음된 소리였다. 이것이 공식 행사라고 하면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먼저 의문이 든다. 권진원은 자기 노래가 이렇게 변용되어 쓰인지 몰랐다고 하면서 당혹감을 나타내었다. 가락의 무단 이용에 따른 저작권 침해를 법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 또 편곡을 담당한 작곡가나 노래를 부른 성악가들은 스튜디오에 가서 앨범 녹음처럼 섭외를 받아 참여했을 터인데 이들은 당시 어떤 심정으로 이 작업에 참여했을지, 또 뒤늦게 뉴스에 논란이 되어 자신들의 연주를 방송에서 들을 때 어떤 ‘현타’감을 느낄지 궁금하다.

문화예술계의 종사자로서 이를 그냥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기기에는 5공화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다시 21세기에 재현된 상징적 사건으로 여겨지면서 ‘이 꼴 보려고 음악했나’라는 자괴감이 든다. 물론 참여했던 개개인 중 일부는 정치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자일 수도 있어서 개사된 노래를 부를 때 딱히 양심에 거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특별한 정치적인 지향점이 없어 정부의 공적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한 음악가로서 영광일수도 있고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혹은 국립 기관이 동원되었다면 그냥 직장의 업무에 충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일부 가사를 부를 때 손발이 오그라들고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이미 참가한 이상 서슬 퍼런 정권의 눈 밖에 나 어떤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겁이 나서 집단의 기운에 자신의 한 몸을 의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 시절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예술은 체제 수호와 유지에 동원되어 왔고 부역한 개인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어찌보면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서 한 개인의 선택과 결단은 참으로 무력하고 무가치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에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부여된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변명을 보며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던 바, 평범한 개인의 ‘무비판적 사고’가 종국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의 문제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오늘 여기에서도 비껴가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침묵 또한 주목할 만 하다. 과거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반응이 미미한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우리 사회 문화예술계는 표현의 자유나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정치와의 상대적 자율성에 대하여 한 차례 홍역을 치룬 바가 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이들이 현 정권에 다 복귀하면서 문화예술계는 자기 검열을 강화함에 따라 사회적 발언은 오히려 더 거세되고 침묵이 일상화 된 느낌을 받는다. 일어나는 사건의 크기에 비해 문화예술계 전반의 대응이 매우 조용하다는 점이 윤비어천가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보다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응당 소란스러워할 장소의 뜻밖의 조용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문화예술인들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순수한' 예술 활동에만 집중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 개인의 정치적 취향, 혹은 편향이 반영된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유명인사들의 시국 선언 같은 옛날 방식에 젖어 있어서인가. 아니면 도올 선생같은 어떤 일갈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문화예술계에 기대해서인가, 여하튼 주술과 예배가 공생하는 현 상황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발언이 이뤄져야 할 개신교와 문화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침묵 속에 숨어있는 음악계가 서로 참 닮아있다는 점이 답답하기만 하다.

대다수의 음악가들과 문화예술가들은 정치와 예술의 관계가 좀 더 느슨하게 엮여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받지 않고 ‘순수하게’ 오직 음악 행위에만 집중하고 싶어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평화 시기에는 음악이 그 자체로 자율적이며 순수해 보인다. 그러나 갈등과 충돌이 첨예한 심리적 혹은 물리적 전쟁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음악 예술은 사회와 정치와의 역학관계에서 항상 종속변수로 연동되기 마련이고 집단과 권력의 선전, 선동의 도구나 체제유지의 효과적 수단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용된다. 음악과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이들 중 블랙리스트도 화이트리스트도 없는, 모든 리스트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하기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기 위해서라도 현재는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치적 민감성을 높여야 할 때이다.

현재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고 한다. 현재의 순응과 무관심, 그리고 침묵은 정치적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미래 문화예술의 비루한 운명을 예비하는 것이다. 지금같이 문화예술의 자율성이 번번이 훼손당하는 시기에는 문화예술 종사자 개개인이 실존적 차원에서 일상적인 행동과 결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침묵과 순응이야 말로 한나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에 맞닿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일상과 평화시부터 견지해야 하는, 윤리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요즘이다.

결론적으로, '윤비어천가' 사건은 우리 문화예술인들에게 일상적 행동과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게 하며 평화로운 시기부터 윤리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 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건강한 균형을 모색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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