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관현악의 경계를 넘는 발상과 흥미로운 도전에 대한 무대가 열린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국악관현악단(단장 이승훤)이 최수열의 지휘로 11월 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국악관현악의 재배치>를 선보인다.

지난 5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된 최수열이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무대다. 최수열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지난 7월 음악극 [숨ː]을 선보인바 있지만 관현악 작품으로는 첫 번째 시도다.

* Re-프로젝트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현대음악의 범주 안에서 국악관현악을 재조명하고 그 매력에 대해 재해석한다. 서양오케스트라는 같은 성질의 유사한 악기군으로 구성된 반면, 국악관현악은 각기 다른 메커니즘을 지닌 악기들의 조합이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국악기들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극대화하는 악기배치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번 무대는 관객들에게 국악관현악의 본질과 현대적 해석을 동시에 선사하며 새로운 음향적,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최수열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작곡가 김택수, 정일련, 플루티스트 최나경, 타악 연주자 최소리가 함께한다. 이들은 서양 음악으로 활동하며 큰 명성을 쌓았지만 고국에서 국악 무대를 위해 다시 모인 현대 음악의 총아들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파격과 실험을 선도하는 지휘자 최수열(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은 현대음악 해석에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정통 레퍼토리부터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최수열은 국악관현악을 현대음악의 큰 틀 안에서 바라보며,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함께 각 악기들의 고유한 매력을 극대화 하는 독창적인 ‘배치’ 실험을 시도한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국악을 기반으로 실험적 현대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 정일련은 2016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작곡가 시절 최수열의 지휘로 초연한 작품 <CENTRE>를 다시 선보인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을 동일하게 배치하는 기존의 구성과 달리 악기들의 특성을 고려해 각 악기군의 독주자를 중심에 배치하고 연주자들을 동심원 형태로 배열하는 독창적 구성을 제안한다. 또한 개량국악기의 사용을 최소화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 당시의 타협된 배치의 아쉬움을 보완해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한 완성된 배치를 선보일 예정이다.

※ 악기 배치도 별첨

과학과 음악을 잇는 작곡가 김택수(샌디에이고주립대학교 교수)의 작품 두곡도 초연된다. 우리나라와 영미권에서 주목받는 김택수 작곡가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작곡으로 방향을 틀고 진은숙의 제자로 성장한 독창적 작곡가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적 색채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공연에서는 타악 협주곡 ‘소리-모리-놀이’를 선보인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 타악기 리듬으로 곡이 시작되고 점차 변주된다. 생명력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퍼포먼스까지 선보일 예정인데 타악 연주는 한국과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최소리가 맡는다.

오스트리아 빈심포니 수석을 역임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플루티스트 최나경(Jasmine Choi)도 이번 공연에 참여한다. 최나경은 김택수의 초연작품 ‘어스름’에 플루트 협연을 맡는데, 이는 일몰의 순간을 포착한 인상주의적 작품으로 국악관현악과 플루트의 독창적인 만남을 선사 할 예정이다.

수석 객원지휘자 최수열은 “관객 분들에게 감동을 느끼고 가시라는 말보다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음악회를 하는구나, 그거 한번 즐겨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관객 분들이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세계 클래식 무대를 종횡무진 활약하는 음악가들이 고국에 함께 모여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국악에 접근하는 무대다.” 라며 “계속 분화하며 발전하는 우리 전통음악의 새 흐름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작곡가 노트

타악기 협주곡, ‘소리-모리-놀이’(김택수 작곡 / 위촉 초연)

우리는 모두 고동과 함께 태어난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 박동은, 우리 각자의 것으로 화한 후, 숨소리와 더불어, 사는 동안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며, 우리에게 음악적 선(先)이해의 토대를 제공한다. 

우리 전통 악기들 중, 절고, 좌고, 장구, 북 등 이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은 심장 박동을 연상시키는데, "소리-모리-놀이"는 여기에서 착안하여, 타악기 주자가 관현악에게 생명을 주는 듯한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이후 작품은 협연자와 관현악단 간에 형성될 수 있는 각종 관계들을 재배치하며, 그 과정을 기하학적 추상화 연작처럼 선보인다. 운율을 고려한 제목에서, "소리"는 물론 음악의 주요소인 소리(특히 악기들로부터 파생되는 고동)를 일컫는데, 협연자의 이름 및 그의 주요 악기가 소리북이라는 점 또한 염두에 두었다. "모리"는 엇모리, 중모리, 등 국악 장단 이름들에 붙이는 접미사인데, 작품 내에서 음악을, 사람을, 또는 관계를 이리 저리 몰아간다는 뜻도 담고 있으며, "놀이"는 말 그대로 음악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유희(연행, 사색, 등) 를 의미한다.

설명이 다소 개념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음악의 묘미 중의 하나는 개념과 실재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이 아니던가?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음악의 각종 층위를 여행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메타 고동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플루트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스름’(김택수 작곡 / 위촉 초연)

미국 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에 살게 되면서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바닷가가 있다.) 일몰을 볼 기회가 잦아졌다. 물론 꽤나 도회지 내음이 나는 동네이긴 하지만, 지그재그로 얽혀 있는 빌딩 숲 사이로 빤히 들여다보아야 겨우 뭔가 보이고 느껴졌던 시절과 비교하면 말이다.

해넘이, 그리고 그 때의 어스름한 공기는 나를 차분하게 한다. 황혼을 인생의 은퇴기 (또는, 평균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예전에는, 인생 말기) 에 보다 흔하게 비유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온기가 남아 있는 볕의 끝자락이 나와 일으키는 이 묘한 공명은 빨리감기를 과하게 동반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낯의 끝은 하루의 끝(이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달려 있기도 하지만)과는 정작 거리가 멀기도 하고, 그 전에 내 교감이 보편적인 도식을 따라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아니 정말 많이 양보해서 그렇다 해도, 시간을 고무줄처럼 다루는 것이 예술가들, 특히 음악가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던가?

“어스름”은 일몰 때 겪는 감각들, 또는 그 찰나에 나를 훑고 지나가는 상념들을 포착해서 그려낸 15분 남짓의 작품이다. 음악적 어휘는 많이 다르고 (국악 관현악이 함께 하면서 이 간극이 더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 음악의 흐름 자체도 광시적인 측면이 있고), 특정 순간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전환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상주의와 결을 같이 한다.

CENTRE(정일련 작곡/ 2016년 초연)

센터(Center)는 매우 흔한 단어인데, 나는 이런 흔한 단어들이 좋다. 오랫동안 그 의미를 곱씹어 보면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와 모든 것에는 중심이 있다. CENTRE (영국식과 프랑스식 철자)에서 오케스트라의 중심은 독주자로 구성된 실내악 앙상블이다. 이 작품 자체에도 중심이 있으며, 중심이 되는 음과 리듬이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배치도 기존과 다르다. 오케스트라의 다른 단원들은 실내악 앙상블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실내악을 확대해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확장한다.

서양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달리, 발현 악기(뜯는 악기)들이 중심에 배치되고 앞줄에 앉아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들의 역할을 대신한다. 또한 더블베이스나 첼로 같은 서양의 저음 악기를 제외한 것 역시 이 작품의 개념 중 하나이다.

나는 국악 오케스트라가 아직 발전 중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서양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작곡가들의 요구에 맞춰 현재의 형태로 발전해온 것처럼, 앞으로 작곡될 작품들에 맞추어 여러 요소가 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여정은 여전히 흥미롭고 역동적인 과정이며, CENTRE는 이 개념으로 그 여정에 함께하고자 한다.

CENTRE는 내 어머니께 헌정한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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