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의 오페라로 보는 세계사] 오페라와 여인의 사랑 _ ① 분노의 사랑

오페라 속 여자 주인공인 Prima Donna (프리마 돈나)!

그녀들이 역사의 운명 앞에서 선택한 삶이 만들어낸 기쁨과 정열과 분노와 희생의 사랑들....

하지만 그녀들이 선택한 그 사랑의 이야기는 비단 한 개인의 삶만을 비추는 것을 넘어 시대와 역사의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접근으로 다루어보는 오페라 인문학 이야기 “여인의 향기“!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오페라가 단순히 그 옛날 서양의 왕실 이야기나 신화 속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은 음악극이 아니라, 어쩌면 바로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인류사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한 그녀들의 만들어낸 역사의 한 축에는 우리의 역사도 관여하였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류와 민족의 다양한 역사가 만들어내고 이어온 오페라 속 프리마돈나들의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에서 인류가 함께 나누어야 할 철학과 인문학적 내용을 함께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본 주제에 대한 여인의 향기는 총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분노의 사랑, 정열의 사랑, 희생의 사랑, 욕망의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① 분노의 사랑

오페라 <르 시드(Le Cid)>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로 보는 여인의 사랑과 분노: 르 시드 와 히메나

<Le Cid> 속의 스페인 역사

오페라 르 시드(Le Cid)는 스페인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스페인의 영토수복전쟁인 레 콩키스타 (Re Conquista) 의 영웅 엘 시드( El Cid) 의 프랑스식 표현이다.

<엘 시드>란 스페인어 정관사 엘 (El) 과 아랍어인 시드 (Cid)의 합성어로, 주군, 대장 등의 뜻을 가진 존칭어이다. <엘 시드> 장군의 본명은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Rodrigo Diaz de Vivar)>인데, 그는 당시 스페인사람들 뿐 아니라 이베리아반도를 양분하고 있던 이슬람인들 사이에서도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르 시드>의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스페인의 영토수복전쟁인 레 콩키스타 (Re Conquista) 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 전쟁은 이베리아반도에 거주하던 두 세력, 즉 북쪽의 기독교 국가들이 남쪽에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던 이슬람왕국을 몰아내고 다시금 기독교인들의 땅으로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국토회복운동을 의미한다. 기원전 2,000여 년 전, 지중해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베리아반도는 지금의 레바논지역의 민족, 즉 페니키아인들의 해상지배를 받아왔던 지역이었다. 그 후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도시국가 카르타고가 강성해지고 그 카르타고의 영향력이 지중해 전반에 걸쳐 강성해 졌기에 이베리아 반도역시 카르타고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기원전 7세기경, 지금의 이탈리아반도에서 생겨난 조그마한 도시국가 로마가 점점 힘을 키우더니 3세기경에는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와 지중해일대의 해상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장장 3차에 걸친 이 전쟁을 우리는 포에니전쟁이라 부른다.

지중해의 영유권을 두고 두 세력은 치열하게 다투게 되었고,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카르타고의 전쟁영웅 한니발도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활약하게 된다.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나고, 승리한 로마제국의 영향력에 지중해 전역과 이베리아반도가 들어간 후로는 갈리아라 불리던 지금의 프랑스 지역과 함께 이베리아반도는 로마제국의 한 지역으로 전락하였고 로마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채굴된 막대한 황금으로 제국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AD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 출신의 국경수비대장 오도아케르가 이끄는 용병들에 의해서 멸망하면서 이베리아반도는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이 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로마 통치하에 기죽이고 있던 이베리아반도 내의 여러 민족들, 즉 수애비족, 반달족, 서고트족 등이 이베리아반도를 놓고 대결하게 되고, 결국 서고트족에 의해 반도는 점령당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지역에서 발생한 새로운 신흥종교 무함마드의 이슬람제국중 하나인 우마이야세력이 북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심지어 이베리아반도까지 침략하게 되는데, 사실 이슬람세력을 이베리아반도로 불러들인 주체는 한참 내분에 휩싸여있던 서고트족의 한 세력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온 이슬람세력들은 아프리카와는 달리 기후나 토양이 좋은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서고트족들을 북쪽 피레네산맥 근처까지 축출하고 그 기세를 받아 피레네산맥을 넘어 지금의 프랑스지역(갈리아)까지 진출하게 되지만 당시 프랑크왕국의 <샤를 마르텔> 궁제(지금의 총리)가 이끄는 군대에 처참히 패배하고(투르전투 AD732)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와 반도에서의 지배력만을 공고히 한다. 그 후 약 800여 년간 이슬람세력은 이베리아반도에 <알 안달루스 (Al Andalus)> 왕국을 세워 지배하였는데, 이 왕국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인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자유롭게 인정하여 당시에 찬란한 부와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그러나 그 찬란하던 왕국은 다시 여러 지역 소왕국인 <타이파>로 갈라지게 되면서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는데, 북쪽으로 쫓겨 가서 숨죽이고 살던 기독교국가들(레온, 나바라. 카스티야, 아라곤)은 다시금 이베리아반도에 기독교국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여러 <타이파> 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 가게되고, 이 운동을 <레콩키스타>즉 <재정복전쟁> 이라 부른다. 이 레콩키스타는 8세기경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이베리아반도내의 기독교세력이 이슬람세력에 대항한 국토회복운동을 이르는 말인데, AD1469년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계승자인 이사벨라 공주와 아라곤왕국의 왕위계승자인 페르난도 2세가 혼인을 함으로 통일 스페인왕국이 세워지고, 이사벨라 여왕이 마지막 남은 그라나다지역에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알 함브라 궁전의 열쇠를 받으면서 길고긴 시간동안 지속된 <레 콩키스타>도 끝을 맺는다.

희곡 <Le Cid> 와 오페라 <Le Cid>

레콩키스타가 한참이던 11세기 무렵, 카스티야왕국의 무장인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엘 시드>의 영웅담을 소재로 한 연극이 1636년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코르네유>에 의해 창작된 희곡으로 초연이 되었는데 그 희곡의 제목이 바로 < 르 시드>였다. 하지만 정말 이 극이 유명해 진 것은 영화 벤허와 십계로 우리에게 유명한 헐리우드의 대 배우 <찰톤 헤스톤>과 영화 <해바라기>로 당대 최고의 색시미를 자랑하던 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이 주연을 맡은 <엘 시드/1965년>라는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 보다 앞서,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에 의해 작곡된 오페라 <르 시드/1885년 파리 오페라극장 초연>는 초연 후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1999년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스페인 출신의 걸출한 테너가수가 주연을 맡은 후 다시금 오페라계에 인기를 가져온 작품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줄거리는 똑같지가 않은데, 영화와 오페라의 줄거리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주인공의 이름과 남자주인공인 로드리고가 여자 주인공인 시멘(히메나)의 아버지를 결투 중에 죽이게 되어 시멘이 로드리고를 저주하면서 극이 이어진다는 점 이외에는 스토리가 거의 다른 작품이다.

시멘(히메나)의 분노

오페라 속의 로드리고는 카스티야왕국의 국왕 페르난디드4세의 충성된 장군이다. 페르난디드 국왕은 전쟁영웅인 로드리고의 아버지 <돈 디에고>에게 국왕 자신의 딸인 <인판타>공주의 경호책임자를 맡기게 되는데, 당시에는 왕의 가장 신뢰받는 수족이 이 일을 맡아왔다. <돈 디에고>의 정적이자 히메나의 아버지이기 한 <고르마스>백작은 나이가 많은 <돈 디에고>가 경호총감을 맡는 것이 부당하다며 왕에게 건의한 후, <돈 디에고>에게도 심한 모욕을 주게 되고, 급기야 둘의 심한 말다툼 끝에 그들은 목숨을 건 결투를 약속한다. 하지만 결투를 앞둔 <돈 디에고>는 자신이 이미 나이가 많아 결투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고, 결투를 피하거나 지게되어 불명예를 가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자신의 아들에게 <고르마스>백작에게 복수를 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약혼녀인 <히메나>의 아버지, <고르마스>백작을 죽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으나, 아버지의 유언과 가문의 명예를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 치열한 결투를 치르고 난 끝에 <고르마스>백작을 죽이게 된다.사랑했던 남자였으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약혼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히메나>는 그에게 파혼을 통보하고 복수를 맹세하게 된다. 해서 <히메나>는 국왕을 찾아가 국경을 넘어 쳐들어온 무어인(이슬람세력)들과 싸우러 <로드리고>를 가장 험악한 전쟁터에 내 보내라고 간청하게 되고, 국왕은 자신이 아끼던 신하의 딸에 간청에 못 이겨 <로드리고>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내 보내게 된다. 이는 <히메나>가 그 전쟁터에서 <로드리고>가 전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둘의 이러한 응어리를 가슴아파하던 공주 <인판타>는 <히메나>에게 찾아가 자신도 <로드리고>를 사랑했으나 그가 <히메나>를 향한 간절한 사랑을 알기에 포기했다고 하면서 그를 용서하라고 간청한다. 이에 <히메나>는 <로드리고>에게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그를 용서하겠노라고 하고,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로드리고>의 카스티야군은 성 야코보의 도움으로(상당히 기독교적 신화의 이야기다.) 전쟁에서 이기게 되고, 끝내 <히메나>의 용서를 받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탈리아 속 또 하나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인 산뚯짜의 분노

이탈리아 최남단의 거대한 섬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역사 가운데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섬이다.

기원전. 시칠리아 섬은 페니키아와 그리스 등의 영향력에 있었고, 그 후 지중해의 패권을 잡은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의 결과로 승전국인 로마영의 섬으로 귀속하게 되었고,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9세기경에는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슬람세력인 파티마왕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그 후 11세기경에는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만족들에게 점령당하기도 하였는데, 점령군인 노르만의 왕 루제로2세는 그리스문화와 이슬람의 파티마문화, 그리고 동로마제국의 비잔틴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시칠리아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이렇듯 시칠리아는 서방 유럽과 아프리카,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동방문화와 과학기술이 집대성한 지역이 되고, 예전부터 지내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뒤엉켜 사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반도 중심부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시칠리아 왕국도 신성로마제국, 프랑스왕국, 스페인왕국 등의 침략으로 식민지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특히 앙주왕조 시대의 프랑스는 시칠리아에 험악한 폭정을 가하게 되면서 반 프랑스주의가 시칠리아인 들에게 자리 잡게 된다.

프랑스의 계속되는 폭정에 분노한 시칠리아인들은 프랑스의 패권을 항상 견제하던 스페인의 아라곤왕국과의 암묵적 협조에 힘입어, 1282년 3월 30일 부활절날 팔레르모의 산토 스피리토(성령) 성당에서 봉기를 하게 되는데, 이를 시칠리아 만종사건(Vespri Siciliani)라고 부른다.(이 소재를 다룬 오페라가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이다.) 이후 이 사건의 여파로 시칠리아인들은 아라곤왕국의 왕과 왕비에게 시칠리아를 다스려 줄 것을 건의하고 교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라곤왕국은 시칠리아를 접수, 이에 대항하던 프랑스의 왕 샤를 1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시칠리아는 아라곤의 식민지로, 육지로 물러나게 된 프랑스는 지금의 나폴리에 나폴리왕국이라는 새로운 왕국을 세우게 된다. 이렇듯 기나긴 역사를 지내오며 강대국들의 식민지배만 받아오던 시칠리아인 들은 약탈과 고난의 시간 속에 피해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고, 북부 이탈리아와의 차별 속에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게 되었다. 게다가 19세기 들어서야 이탈리아가 통일된 독립국가로 태어나게 되었으니(1861년), 최남단에 위치한 섬, 시칠리아는 교통, 치안, 공업화 등등 무엇 하나 본토로부터 관심을 받는데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보다 더 가족 중심, 친인척 중심의 사회로 변모해 갔다. 게다가 남부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통일 이탈리아의 왕인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사보이아 왕국은 프랑스어를 쓰는 왕국, 즉 또 하나의 프랑스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나) 19세기 혼돈의 시대에 서 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19세기 이탈리아는 혼돈의 세월이었다.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영웅 <가리발디>장군이 북부 이탈리아의 왕국인 사보이아 왕국의 빗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이름으로 시작한 통일전쟁으로 온 유럽의 관심은 이탈리아에 쏟아져 있었고,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던 도시국가들은 하나씩 둘씩 가리발디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그들의 식민지를 내어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나폴리왕국과 시칠리아였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산악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남부지역(시라쿠사)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지나친 문맹으로 말미암아 투표내용이나 투표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맞게 된 통일이탈리아를 시칠리아사람들은 너무 생소하게 받아들였고, 프랑스왕국의 일원정도로 생각한 사보이아왕국에 의해 다시 식민지가 된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문명화에서 엄청 뒤쳐져 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이던 1880년 시칠리아출신 조반니 베르가 (Giovanni Verga)가 쓴 향토소설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시골기사도)에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ni)가 작곡한 곡으로 로마의 악보출판사인 손초뇨(Sonzogno)사에서 주최한 단막오페라 공모에 당선되어 무명 피아니스트인 마스카니를 일약 유명 작곡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사실주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일컫는 레온 카발로의 팔이아치와 더불어 이 오페라 역시 신화적인 내용이나 영웅적인 내용이 아닌 19세기 현재 시칠리아라는 농촌에서 벌어진 비극사건을 내용으로 담담하게 극적 진행을 만들어 놓았다.

다) 헌신적 사랑에 배신당한 산뚯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주인공 산투짜는 전형적인 시칠리아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칠리아는 19세기가 되어서도 상당히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가족 중심적, 지역 중심적 가치관이 어느 유럽 보다도 높은 지역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투릿투는 홀어머니와 함께 주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일종의 BAR), 그 동내에서는 꽤나 개방적 사고를 가진 로라 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투릿투는 군대에 입영을 하게 되고, 그 사이 로라는 역마차꾼(당시 역마차 사업은 상당한 이권사업이라 현재로 말하면 지역 건달패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업으로 보인다.)인 알페오와 결혼하게 된다. 아들이 군대에 입대한 뒤 홀로 남은 투릿투의 어머니는 자신을 정성스레 도와주던 산투짜를 아들의 약혼녀로 받아들이게 되고, 재대를 한 투릿투는 자신의 옛 연인인 로라가 이미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사실에 절망한 나머지 어머니가 원하는 여자인 산투짜와 약혼을 하고야 만다. 하지만 집을 자주비우는 로라의 남편 알페오의 눈을 피해 로라와 투릿투는 몰래 사랑을 나누어 가고, 이를 확인한 산투짜는 좌절하여 투릿투에게 간청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투릿투의 귀에는 산투짜의 간청하는 목소리가 짜증스럽게만 듣기고, 결국 울며 애원하는 산투짜를 증오하고 밀쳐낸다. 이에 분노한 산투짜는 결국 알페오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려 알페오 일당으로 말미암아 투리투를 죽음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투리투는 그렇게 피살당하고 극은 막을 내린다.

3) 구시대의 소멸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 등 을 기점으로 하여 유럽의 정신사적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존의 가족질서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사랑과 순결, 지고지순, 희생 등의 모양으로 그려져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껏해야 반짝이는 재치와 그녀들을 돕는 도우미들의 역할에 기대어 왕이나 귀족을 놀려주는 정도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오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여성의 노동생산성이 그게 향상되었고,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여성의 목소리가 가족이나 지역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오페라의 경우에도 카르멘은 분명 기존의 여성상에서 진일보한 독자적 캐릭터를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여자 배역들이 분노를 표시하는 방법이 무척 강해졌다는데 있다. 히메나와 산투짜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분노로 살인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것은 오페라 돈 죠반니에서 돈나안나의 아버지를 죽인 돈 죠반니에게 돈나 안나와 돈나 엘비라, 돈 오타비오등이 우르르 달려가 회개를 요구하는 차원의 응징과는 무척 거리가 있는 방법이다. 히메나의 살인청탁 방법은 마치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를 겁탈한 후, 이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의 가장 치열한 곳으로 파견하여 죽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즉,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살인은 결국 다윗왕의 성전을 여호와가 받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다윗왕의 아들까지 목숨을 잃게 만드는 엄청난 죄악이라는 점에서 분명 히메나의 분노는 그만큼 위중한 것이었다. 더욱이 산투짜의 분노는 예수를 은전 스무냥에 팔아넘겨 십자가상에서 죽게 만드는 가롯유다의 모습을 연상케 할 만큼 엄중한 죄악이 묻어있는 분노다. 산투짜는 분명 알페오일당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고, 그에게 자신의 약혼자와 로라의 부정을 말한다면 결국 투릿투는 살해당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투릿투의 어머니 루치아는 산투짜에게 자신의 아들의 일탈을 숨기려 애쓴다. 그 후한을 염려한 것이다. 오페라 속에 나오는 프리마돈나의 캐릭터중에 이 외에도 강력한 분노를 표현한 사례는 많이 있지만 (예를 들어 투란도트 역시 수많은 왕자들을 살해한다.) 가장 드라마틱한 성격을 나타내는 두 인물이 바로 히메나와 산투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의 분노는 단순히 극중에 한 인간에 대한 분노만을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여성의 주체성, 여성의 목소리, 자유의지 등 수많은 정치, 문화, 사회, 종교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 문학으로 음악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themove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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