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야 신웅순

석북 신광수는 조선 영조 때 세상에 시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사십 가까이에 진사에 합격했으나 말단 벼슬을 전전하다 환갑이 되어서야 비로소 기로과에 장원 급제했다. 곧바로 승지에 임명, 당상관이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인생의 질곡 속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명시들을 남겼다. 「관산융마」는 1746년 35세 때 한성시 2등으로 급제한 시로 원제는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歎關山戎馬,악양루에 올라서 관산 융마를 탄식하다)’이다. 관산은 관새의 산, 융마는 병란을 말한다. 동정호 악양루에 올라 고국 전란을 탄식한 두보의 시 ‘등악양루’를 주제로 한 과시이다.

秋江寂寞魚龍冷

人在西風仲宣樓

梅花萬國聽慕笛

桃竹殘年隨白鷗

…… 하략……

가을 강은 적막하고 어룡은 차갑구나

사람은 서풍을 맞으며 중선루에 서있고

만국의 매화곡 자주 듣는 황혼의 피리소리

도죽 지팡이 짚고 남은 인생 백구를 쫒는구나

1연은 애향심, 2연 연민사상, 3연 충군애민, 4연 조국애, 총 4연 44구로 애국 애족과 우국충정으로 일관되어 있다. 방이 나자 널리 퍼져 바로 관현 가사에 올랐으며 악원, 기방에서 200년 동안 계레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행시이자 악부이다.

형식과 내용이 잘 조화되어 있어 홍류계에 널리 애창되었으며 특히 평양 교방에서 인기가 높았다. 당시 교방의 기생들이「관산융마」를 읊지 못하면 일류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멀리 중국에까지 회자되었으며 자주 외침에 시달려왔던 우리 민족에게 애틋한 심금을 울려주었던 수심가조의 노래이다. 일제하에서 서도창 「관산융마」를 듣고는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애조 띤 가락에다 나라를 걱정하는 내용이 맞아떨어져 민족을 잃은 슬픔과 일치했던 것이다.

춘원 이보경은 석북의 「관산융마」를 듣고는 그를 흠모한 나머지 아예 석북 이름인 광수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유성기판으로「관산융마」를 들을 수가 있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도 들 수 없다.

목단이 자신의 시「관산융마」를 부를 때마다 목소리가 지나가는 구름을 멈추게 했다는 석북 시가 있으며 평양 연광정 위에서 일지춘이 노래를 부를 때 삼십년 동안 물색은 새로운데 자리에는 오로지 일지춘만 있다고 손수건을 적셨다고 한 석북 아우 진택의 시가 전하고 있다.

영조 때 기생 목단과 일지춘의 창이 얼마나 유명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번암 채재공의 시구, 고시조 등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가원은 생존시 작품이 널리 애송된 이는 중국 시인 백거이를 들 수 있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석북을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석북을 한국의 백거이라고 말했다. 널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시가 애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석북은 수많은 시를 지었으며 그 중에서 「관산융마」만큼 오랫동안 세인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는 없다.

시인은 충남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의 묘소에 고요이 잠들어 있다.

과거의 낡은 체재를 일신하고 새 시풍을 세워 일세를 풍미했던 석북. 그리고 일생을 가난과 싸워왔던 석북. 그의 형제 기록 광연, 진택 광하 그리고 누이 부용당의 석북 4남매 모두가 뛰어난 시인이었으며 이후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숭문 팔문장으로 이어져 당시 3대의 명문 석북가를 이루었다.

「관산융마」는 칠언절구로 된 38구의 한시에 한글토를 달아서 부른다. 쭉 뻗는 속청과 마음을 가라앉히 듯 단아한 평성은 시원스러우면서도 비장감을 자아낸다. 통목과 속청을 적절히 교차시켜 불러야하기 때문에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서도창에 가깝고 창법은 가곡, 가사, 시조창에 가까우며 단소로 노래 선율과 비슷한 수성가락을 사용한다.

시조에는 장식음들이 많지 않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정하고 담백하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관산융마」는 구성진 장식음들이 많아 선율이 다양하고 복잡하나 그렇다고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길게 뻗다가도 장식음으로 조이고 꺾어 물 흐르듯 또 길게 빼기도 하고 흔들기도 해 더욱 처연함과 비장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눈발 날리는 겨울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먼 산을 바라보며 부르면 제격일 것 같다. 누가 옆에서 단소로 수성반주라도 해준다면 가던 눈발도 가던 바람도 잠시 멈추다 갈 것 같다.

필자도 그런 날에 불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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